일상

대체 내 글의 어디가 재밌다는 거야?

By 2018년 4월 13일 No Comments

 

어제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스타트업 팀으로 콘텐츠를 고민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콘텐츠라는 결론을 내렸기에,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예전에 진행한 게임 엘노아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다.

엘노아 프로젝트는 시즌제로 기획되었고,

한 시즌에 4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4명의 이야기가 합쳐져 시대를 만드는 스토리였다.

그리고 시즌이 변경되면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각 주인공은 역사적 인물에서 차용해 행적을 변형시키는 형태였는데,

첫 시즌의 메인 주인공은 첫 번째 시민, 율리우스 시저 혹은 카이사르였다.

나머지 3명의 주인공은, 카이사르의 동생, 카이사르의 애인, 카이사르의 친구이자 숙적이다.

시즌 1에서 엘노아 역사에서 가장 큰 업적과 영향력을 가진 것이 카이사르기에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시즌 1의 제목이자 첫 챕처의 제목은 ‘퍼스트 휴먼, 카이사르’ 였다.

엘노아의 카이사르는 북쪽의 이종족 ‘엘프’와 계속 전쟁을 벌인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리프 대륙의 이주민인 인간은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했고,

카이사르는 이것을 타계하기 위해 북벌을 주장하고 실행했다.

 

엘프와 카이사르의 전쟁은 미국의 서부개척을 차용했다.

리프 대륙의 엘프는 일반적인 판타지의 엘프가 아니라 미국 원주민(인디언, 홍인)이다.

하얗고 귀가 뾰족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가 아니라

빨갛고 얼굴에 분장을 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미국 원주민.

하지만 처음으로 등장하는 엘프- 바리는 하얀 얼굴에 귀가 뾰족한 인간이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알비노(백색증)을 앓고 있는 인간.

모두가 생각하는 엘프의 이미지를 일부러 비틀기 위해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기존 엘프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다가

다른 엘프와 대비되어 의아함을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바리는 엘프도 아니고, 엘프가 기른 사람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영리하고 인망을 얻어 젊은 층의 수장격인 인물로 성장했기에

카이사르와 갈등에서 중심인물로 그려진다.

 

카이사르와 엘프의 전쟁과 갈등을 통해 다문화에 대한 이야길 하고 싶었다.

마치 엘프와 인간은 이종족 같지만, 사실 같은 종족이다.

사실 이것이 현대에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로 과거의 각각의 인종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랬다.

엘노아에서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즌 1은 그러한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카이사르는 인류를 위한 대의를 가졌다고 묘사되고,

엘프와의 갈등보다 지도층과 젊은 개혁가 카이사르의 갈등이 더 중요한 갈등으로,

대의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지배층의 저항이 더 중요한 갈등이다.

카이사르의 북벌은 인류를 위한 대의라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고,

북벌은 막강한 군사력을 거느리게 하므로 지배층은 언제나 카이사르를 의심했다.

결국 카이사르는 엘프와의 전쟁 중 회군하여, 강을 건너 쿠데타를 일으키고,

첫 번째 인간, 즉 황제가 되어 인류의 방패를 자처하며 엘프와의 전쟁, 북벌을 계속한다.

 

한편, 바리는 엘프 남성과 결혼하여 2세를 낳는다.

바리와 엘프 남성 사이의 아들 ‘브루’는 시즌2의 주인공이다.

브루는 부모 몰래 엘프 사회를 빠져나와 인간 측에서 활동하고,

카이사르의 측근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과 엘프 사이의 갈등을 고민하고,

자신은 인간인지 엘프인지 역시 고민하게 된다.

 

이윽고 브루는 자신도 인간이고,

더나아가 엘프와 인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을 위한 대의를 가진 카이사르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시즌 1의 절대선처럼 느껴지던 카이사르가

변하고 타락해서가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카이사르의 인간을 위한다는 대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주인공이 브루다.

카이사르의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흔하디 흔한

권력을 잡고 변해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못했던 또 다른 정의와 대의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즌 2의 제목은 ‘세컨드 휴먼 브루’.

시즌 2는 브루를 비롯한 이종족들이 ‘인간’의 개념, 경계선을 흔들고,

브루가 인간과 인권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인식이 확장되면서 엘노아 세계관은

영웅시대가 지나고 시민사회와 유사한 세계관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차후 MMO RPG로 전환하기 위한 밑작업, 사전작업이었다.

MMO RPG를 개발할 실력은 없었고,

비주류이고 만들기 쉬운 카드배틀로 시작해야만 했던 당시의 상황에 맞춘 기획이랄까.

(그 때는 몰랐는데, 와우와 비슷하다. 카드배틀이라는 장르는 하스 스톤과 비슷하고.)

어쨌거나, 엘노아 시즌1은 엘프와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과 다문화 가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다.

금발 청안의 청년이 군대가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검은 피부, 곱슬머리의 한국 모델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혼혈의 아이들이 내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게임을 하면서 인권에 대해 배우고 다시 생각해본다면,

꽤 좋은 게임이었노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 시즌 2의 주인공 중 하나는 미노타우르스(소머리 괴물)였다.

이야기는 테세우스라는 인간이 소머리 괴물에게 잡혀오면서 시작한다.

소머리 괴물은 인간의 등에 숫자를 적어놓고

31번부터 잡아먹기 시작한다.

33번의 인간이 잡아먹혔을 때,

36번의 테세우스는 자기 차례가 올 때,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소머리 괴물은 35번을 지나쳐 36번 테세우스를 잡아먹기 위해

창고에서 테세우스를 끌고 나온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리고 준비기간이 부족했던 테세우스는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부엌에서 돌도끼를 갈고 있는 소머리 괴물을 바라보며

테세우스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는데,

그동안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 소머리 괴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소머리 괴물은 숫자는 단지 관리를 위한 번호였을 뿐이지,

숫자 순서로  잡아먹는 것은 너의 제멋대로인 착각이었을 뿐이며,

인간도 한 순간의 변덕으로 축사의 소를 다른 소로 대체하기도 하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너희에게 소가 가축이듯, 나에게 인간은 가축이었을 뿐이지, 그것이 불운도 아니고,

이미 테세우스의 계획을 모두 알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계획대로 될거라 자신하고 그것을 불운이라 말하는 것을 비웃는다.

축사 안의 소가 세운 계획이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듯이.

 

미노타우르스는 순조롭게 테세우스를 잡아먹고,

오만한 인간들을 더욱더 조롱하기 위해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로 하고, 한 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미노타우르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는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축사에서 기르는 소의 입장을 소머리 인간의 입으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기획으로,

사실 시즌 1만큼 구체적으로 기획해놨던 것은 아니었지만,

꼭 엘노아에 포함해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졌을 때,

팀원은 흥분하며 이걸 콘텐츠로 다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웹툰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든,

어떻게는 네트워크를 통해 콘텐츠로 만들어보자고.

하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나는 이걸 연출할 연출력도, 표현할 필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콘티를 그릴 수 없다.

사실 게임 시나리오 라이팅을 시도했으나 더럽게(!) 재미가 없었고,

소설로 적어도 보았으나 역시 더럽게(!!) 재미없기는 매한가지였다.

 

팀원은 여전히 나를 설득했다.

자기는 정말 책도 안읽고, 글읽는 것을 싫어하는데

내 글은 흥미롭게 읽고 가끔은 공유도 하지 않았냐며 이야길 한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로 반론을 했는데,

내가 몇 몇 매체에 글을 써봤는데 별로 반응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길 했다.

그러자 내 블로그를 보면서 이야기하자고 블로그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에 결코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만난 친구도 오랜만에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어쩌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한 번,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주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내 이야길 흥미있게 듣는 것을 몇 번 경험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하고.

 

나는 여전히, 내 글의 어디가 재미있는지 1도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들이 좀 찾아줬으면 좋겠다.

대체 내 글의 어디가 재미있는 것인지.

이런게 우리 팀의 콘텐츠가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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