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위기의 범죄자’라는 웹툰을 재미지게 보고있습니다. ‘위기의 범죄자’는 ‘사이코 패스의 시대’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표현이 지금 시대를 정말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범죄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치료하려는 연구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이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진의 피실험자입니다. 연구자들은 남자 주인공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여깁니다만, 웹툰에서 내용을 보면 그가 진짜 사이코패스 살인마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사실 남자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는 오늘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 할 것은 이 시대가 사이코패스들의 시대라는 것이죠.
‘위기의 범죄자’에서 여자 주인공의 일갈이 이 글을 쓰게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루려는 니들이야말로 사이코패스라고!”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 등과 같은 사이코패시 성향이 높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특징이 비즈니스 마인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요?
지금은 자본주의의 시대입니다.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자본주의의 시대라는 점이죠. 이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는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시대가 사이코패스의 시대가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것이겠죠.
저는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관계가 없는 it업계에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법학이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실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학이 정의의 학문이라기보단 권리의 학문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하버드 대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서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 한국 법대의 커리쿨럼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법학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법학은 권리와 의무의 학문입니다. 권리는 상대의 의무에 대응하니까요. 아마도 제 스스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권리의 학문으로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 시대의 특징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은 싫으면서 자신의 의무는 게을리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수많은 진상을 보지만 자신이 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당연한 권리 주장이라 생각하죠. 진상을 일종의 요령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이러한 원인이 사이코패스에서 주로 나타나는 낮은 공감능력과 자기 중심성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의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개개인의 사이코패스화로 꼽고 싶습니다. 기득권의 구조적 문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결여, 열정페이, 수많은 민폐남과 민폐녀… 다 같은 이유 아닐까요?
한편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지적했으면 응당 해결책과 대안 역시 따라야 좋은 비판이 될 것인데, 해결책과 대안이 없으니 그저 비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 밖에 없군요. 자신도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르며,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니 이 얼마나 불편하고, 씁쓸한 현실입니까.
p.s
1. 사실 ‘불편한 진실’은 엘 고어의 환경다큐영화입니다.
2. ‘비즈니스 마인드’의 정의가 뭘까요? 사전적 정의가 없지만 제 스스로는 과업을 성취하려는 목적성과 냉정한 손익계산 두 가지로 정의하고 썼습니다.
3.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걸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즈니스의 가장 핵심은 ‘이 사람과 일하고 싶다’라는 마음 혹은 신뢰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비즈니스 마인드’의 정의에는 적합하지 않군요.
4. 오늘도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위기의 범죄자 글 작가 입니다.
지금 사회를 작품과 함께 리뷰한 글을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범죄자는 구상부터 최근 글 마무리 할 때 까지도
언급하신 지금 사회의 사이코패스화를 중심으로 그려냈는데요.
알아봐주시 감사할 뿐이에요…
IT쪽에 계시다기에 궁금한것도 있고 해서
이렇게 댓글 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